누워서 침 뱉기
저녁을 먹고 책을 읽었다. 어느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들을 기록한 에세이였다.
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직업에 관해 이야기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어느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갸우뚱거렸다.
작가가 일하는 직종에 문제가 있었나 보다. 그 직종 관련 종사자들이 한데 모여 법정 공방을 다퉜고 작가도 그 싸움에 참여한 이야기였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작가의 남편이 ‘호들갑이다, 오버한다, 집단 이기주의 아니냐?’라는 말했다고 하는 것. 그래서 작가는 남편이 그런 몰상식한 사람인 줄 몰랐다며 한 소리 했다는 에피소드였다.
이 글은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드러냈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땐 작가의 말에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면서 읽었다. ‘남편이 너무했네’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니 꼭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문제건, 양측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 맞다. 정말 남편이 몰상식하게 말했을 수도 있고 평소에도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남편의 잘못이다.
반대로 평소 가정을 나 몰라라 하고 일만 하는 아내에게 쌓였던 게 많았던 남편이 그때 한 번 울컥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해했거나 와해하여서 전달되었을 수 있다. 그럼, 아내의 잘못이다.
정리하자면 당사자 외에는 부부 사이를 모르고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순 가치관의 차이이고 의견 다툼인지 말이다.
여기서 내가 갸우뚱거린 이유는 이런 에피소드를 작가 본인의 이름이 걸린 책에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가 함께 남편 욕을 하게 유도했다는 점
남편의 지인들도 이 책을 볼 수 있다. 두 부부의 아이도, 그 아이의 친구도 볼 수도 있다 . 그런 책에 내 남편을 욕하는 에피소드를 적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누워서 침 뱉기이다.
이 에피소드를 꼭 쓰고 싶었더라면 아는 사람 얘기’, '들었던 얘기' 정도로 포장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한 에피소드에서 벌어진 갈등의 잘잘못을 떠나 사랑하는 배우자를 욕먹게 쓴 것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부부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는 내 가족을 행여 실수라도 밖에서 욕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나쁜 놈이고 이혼해서 남남이 된 게 아닌 이상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결국 누워서 침 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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